벌써 3년 전 추억이 되었다. 바르셀로나를 다녀온지. 3일째 되던 날인가. 지하철을 타기 위해 게이트를 통과하다가 누군가를 가볍게 스쳤다. 지하철을 기다리면서 자켓이 가벼워진 듯 고개를 갸우뚱,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이런... 카메라...


게이트를 뛰어넘어 계단을 올라 지상으로 올라왔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 이쪽인가 아니면 저쪽인가... 숨이 너무 가빴지만 지체할 시간이 없다. 나의 자켓을 아주 잠깐 스쳐간 것이 회색 트레이닝복이었나... 잘 모르겠다. 일단 지상으로 뛰쳐 나온 방향과 반대로 사람들 사이를 헤치면서 무작정 달렸다.


내 눈 앞에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은 어떤 스페인 청년이 보였다. 난 운이 좋았고 제 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평소의 나라면 나에게는 그럴 용기가 없다. 그러나 그의 앞으로 가서 다짜고짜 멱살을 잡고 내 카메라를 내놓으라고 소리치며 몸을 마구 뒤졌다. 그는 주웠다며 그것이 내 것임을 증명하라고 했다.


카메라를 낚아채고 지하철로 돌아오면서 눈물이 날 뻔했다. 가우디의 그 위대한 건축물들을 찍은 사진 때문이 아니며 비싼 카메라 때문도 아니었다. 그 안에 메모리 카드. 내 아이가 태어나서부터 그때까지의 성장한 사진들이 담겨 있던 그 메모리 카드가 그 카메라에 꽂혀 있었다.


아이가 세상에 나와 보낸 1년 반의 시간을 추억하게 해줄 순간순간의 기록을 잃어버릴 뻔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살아온 순간순간의 기록들이기도 하다. 난 1년을 15분으로 줄이지는 못할 것 같다. 내일이 되면 오늘 담지 못한 아이의 순간을 아쉬워 하니...



You know how everyone’s always saying seize the moment? ... I don’t know, I’m kind of thinking it’s the other way around, you know, like the moment seizes us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보이후드>의 메세지는 어쩌면 주인공 메이슨의 이 마지막 멘트에 모두 담겨져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위대한 배우 찰리 채플린의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일까. 시간과 순간이라는 것이 그렇다. 가까이서 보면 희망과 절망, 기쁨과 슬픔, 기대와 실망, 행복과 좌절 등의 순간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 시간의 존재를 알아챌 겨를이 없고 정말, 슬픔, 실망, 좌절만 크게 다가오지만,


멀리서보면 시간은 잊혀질 뻔한 희망, 기쁨, 기대, 행복 같은 순간들을 찾아내어 하나의 희극, 아니 커다란 하나의 인생으로 만들어준다. <보이후드>라는 영화는 메이슨이라는 아이가 어린이가 되고 청소년이 되고 그리고 성인이 되어 부모를 떠나기까지의 12년을 매년 15분씩 순간순간을 편집하였고, 이렇게 편집된 전체가 시간의 지휘로 인생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보이후드>가 가까이 다가오는 또 다른 가장 중요한 이유는 그 편집이 모든 부모들에게 주어진 의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이미 시간의 존재와 그 치유의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아이들의 인생의 순간들을 편집해주고 성인이 되어 부모의 품에서 벗어날 때 시간의 위대함을 일깨워줄 수 있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야 한다는 것만 가르쳐줄 수 있다면 부모가 무엇을 더해야 할까.


<보이후드>가 가까이 다가온 또 다른 두번째로 중요한 이유는 그 아이의 순간을 편집하면서 부모의 순간도 함께 담겨짐을 깨닫는 데에 있다. 그것은 아이의 그 소중한 순간을 늘 함께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해야 아이에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 수 있고 세상의 선입견과 편견에서 벗어나 아이가 스스로 바른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다.



바르셀로나에서 잃어버릴 뻔 한 것이 지갑이었다면 난 그렇게 달리지 않았을 것이다. 소매치기범을 좇아 그렇게 달릴 수 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가져간 것이 아이가 성인이 되어 나를 떠날 때 아이에게 주어야 할 순간순간들의 일부였기 때문이며, 그것을 지켜야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나는 <보이후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메이슨이 아버지로부터 받기로 약속한 오래된 페라리 대신 낡은 토요타 트럭을 타고 집을 떠나 도로를 달리는 장면에 삽입된 곡이 있다. 메이슨은 페라리가 아닌 토요타 트럭을 타게 됨으로서 아버지가 된다는 것을 배웠을지 모르겠다. 그러면서 흐르는 Family of the Year 라는 밴드의 <Hero>.



So let me go
I don't wanna be your hero
I don't wanna be a big man
I just wanna fight like everyone else


Your masquerade
I don't wanna be a part of your parade
Everyone deserves a chance to
Walk with everyone else


부모의 역할은 아이가 시간의 존재를 깨닫기 시작한 순간까지이다. 딱 여기까지다. 그 순간 아이는 떠나겠다고 할 것이며 그 때 흔쾌히 보내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아이가 부모로부터 독립함은 부모가 아이로부터 독립함을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이며 그 이후의 순간을 편집하는 것은 성인이 된 아이의 몫이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에게 이 영화를 추천한다.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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