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르던 개가 물어뜯고 직장 동료가 공격하고 아내가 나를 찌르는 악몽에 매일 밤을 시달리는 주인공 커티스는 깨어 있을 때에는 거대한 폭풍이 몰려오고 황토색 비가 내리고 검은 새떼들이 몰려오는 망상에 시달린다. 불안에 시달리던 커티스는 결국 개는 형에게 줘버리고 직장 동료도 바꿔 버리더니 거대 폭풍으로 인한 세상의 종말에 대비해 마당에 직접 콘테이너를 묻고 방공호를 만들기에 이른다.


그런데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집은 대출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듣지 못하는 어린 딸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하는 현실. 커티스는 콘테이너를 사기 위해 아내 몰래 추가 대출을 받고 회사의 중장비를 몰래 사용하다 들켜 급기야 해고까지 당하고 만다. 그 덕에 직장 의료 보험의 지원으로 가능했던 딸의 수술마저 불가능해졌다. 아내 사만다는 그저 눈물이 날 뿐이다.


가족을 폭풍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방공호를 만든 것이지만 정작 그것을 만드는 과정은 가족을 계속해서 더 큰 위기로 내몰고 그 과정을 지켜보아야 하는 관객들은 내내 불안해 해야 한다.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대하지만 커티스의 결정은 매번 그의 가족들과 관객들을 실망시키고 더 큰 불안을 느끼게 한다. 관객들을 매우 불안하게 하는 이 영화 <테이크 쉘터, Take Shelter>의 내용은 대충 이러하다.



요즘 나의, 우리의 삶은 어떤가. 한마디로 불안하다. 커티스의 삶과 다른 것이 무엇인지. 현대를 사는,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하는, 지극히 평범한 직장인의 삶은 그야말로 불안하다. 직장이라는 곳은 늘 나에게 기꺼이 월급을 제공하는 것일까. 노동을 제공하는 피고용인이라는 위치는 늘 불안할 수 밖에 없다. 그 어렵다는 취업이 담보된 것도 아닌데 엄청난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씨가 마른 전세로 차라리 집을 사겠다며 그 나이에 은행에 빚을 진다. 만약 직장에서 나와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다면...


이러한 불안은 특수하거나 일시적인 것이 아니다. 사람들의 의식 한 켠에 자리를 잡고 늘 상주하면서 우리를 위기의 순간으로 내몬다. 정신분열증? 자주 찾아오는 위기 속에서 정신줄을 놓치 않고 버텨내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미치겠네... 라는 말은 어쩌면 그 경계까지 밀려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 각성하기 위한 되뇌임일수도 있으며 이 말 한마디가 21세기 자본주의 현대 사회를 규정하는 한마디가 아닐까 싶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본을 소유하지 못하고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여 먹고 살아햐 하는 계급의 불안을 의미한다.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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