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리듬 이야기 [5]

기연즐 2013. 12. 18. 11:46


<10> 리듬 이야기 [1]
<11> 리듬 이야기 [2]
<12> 리듬 이야기 [3]
<13> 리듬 이야기 [4] 에 이어서

이전 글에서 박자 (meter) 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렇다면 박자만 주어지면 리듬이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물론 그렇지는 않습니다. 박자는 리듬 패턴을 만드는 가이드라인이죠. 곡의 빠르기를 정하고, 그 빠르기에 따라 8 비트, 16 비트 등으로 적절히 박을 분할하고, 분할된 박들은 그 길이를 정하여 서로 어떻게 결합할지 정하고, 그리고 그렇게 이합집산된 박들의 강약 등을 정해주어야, 비로소 하나의 리듬 패턴이 만들어집니다.

고전음악에서 곡의 타이틀로 종종 듣는 왈츠, 미뉴에트, 부레, 파반느, 룸바, 삼바, 탱고, 보사노바, 폴카, 하바네라, 사라방드, 볼레로, 쿠랑트, 샤콘느, 마주르카, 폴로네이즈 등등의 명칭은 원래는 어떤 리듬 패턴을 말하는 것들이죠. 즉 몇분의 몇 박자를 어떻게 분할하고 어떻게 강약을 주는 패턴들로 대부분 무곡 리듬인데 곡의 제목으로도 사용하는 것입니다.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 에 삽입되기도 한 헨델의 합시코드 모음곡 중 일부인 <Sarabande> 나 모리스 라벨의 스페인 무곡의 관현악곡 <Bolero> 는 곡의 타이틀이 리듬 패턴 명칭으로 알려져 있는 대표적인 경우에 해당하죠. 둘 다 스페인의 무곡 리듬으로 알려진 3 박자 계열의 리듬 패턴들입니다. 먼저 <사라방드>의 도입부를 잠깐 보면 다음과 같죠.


선율적 리듬인 동시에 <사라방드> 라는 춤곡의 리듬 패턴이기도 합니다. <사라방드>의 특징이라면 두번째 박을 길게 끌고 세번째 박은 아주 약하게 연주하는 것이죠. 왈츠도 비슷하기 한데 왈츠는 세번째 박을 제대로 소리냅니다. 마이너의 이 <사라방드> 는 뭔가 무거운 짐을 지고 터벅터벅 걸어가는 듯한 무거운 리듬의 비장감이 들죠.

모리스 라벨의 <볼레로> 는 전곡에 걸쳐 아래의 패턴이 계속 반복됩니다. 드뷔시와 함께 뛰어난 인상주의 작곡가인 라벨의 곡 중에서는 다소 독특한 곡이라고도 하죠. 사용된 리듬 패턴의 두번째 마디는 원래 볼레로 리듬 패턴에서 약간 변형되어 있습니다.




작은북으로 시작하는 이 리듬은 수십번 반복되면서 곡이 끝날 때까지 이 리듬이 곡의 하부 구조를 지탱시켜 줍니다. 그리고 이 리듬 패턴 위에서 마치 나른하게 서로를 갈구하며 쫓고 쫓기며 춤추는 아라비안 무용수 남녀 한쌍의 춤동작이라도 떠오르는 듯한 그 아래의 멜로디가 흐르죠. 아라비안 느낌이 많이 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볼레로>가 참 재미있는 곡이라고 생각하고 종종 듣는 곡이기도 합니다.  라벨은 이 곡 때문에 유명해졌지만 실제로는 장난삼아 만든 곡이라고도 하죠. 그만큼 구성이 독특합니다. 리듬 패턴은 변화하지도 않고, 하나의 테마만 계속 반복되죠. 대신 멜로디와 리듬을 연주하는 악기 편성들이 계속해서 조금씩 변화하며 거대해지고 격앙되더니 마지막에는 관현악이 총출동합니다.

그런데 이 선율에도 리듬이 포함되어 있죠. 실은 계속 반복되는 <볼레로> 의 리듬 패턴에서 많이 벗어나 있습니다. 헨델의 <사라방드> 과 비교해서 볼 때 성부를 크게 리듬과 선율로 구분해보면 두 성부의 리듬이 다르다는 것이죠. 선율적 리듬에는 당김음이 심하게 들어가 있기까지 합니다. 뭔가를 강하게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일 수도 있고. 이런 충돌은 음악적인 흥분을 만들어 낸다고 하네요.

다음에 계속...


2009년 10월 2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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