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리듬 이야기 [6]

기연즐 2013. 12. 18. 11:55


<10> 리듬 이야기 [1]
<11> 리듬 이야기 [2]
<12> 리듬 이야기 [3]
<13> 리듬 이야기 [4]
<14> 리듬 이야기 [5] 에 이어서

이름을 가지는 리듬 패턴들은 대개 춤곡입니다. 이전 글에서는 리듬 패턴이 확실히 들리는 예를 들었죠. 하지만 순수 음악회용 음악의 경우에는 곡의 타이틀이 춤곡 리듬 패턴으로 붙여 있다 하더라도 그 리듬 패턴들이 겉으로 꼭 드러나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실 꼭 드러나야 할 필요는 없죠. 음악에 맞춰 춤을 출 것도 아니고 게다가 잘못하면 동요처럼 단순하게 들릴 수도 있으니까.

리듬 패턴은 드러나지 않아도 대신 음형 (figure) 이라는 것은 드러납니다. 음형이란 간단히 말하면 리듬, 선율, 화성 등이 포함된 하나의 단위를 말하죠. 간단한 예로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 에서 "따다다단" 하는 것들. 그 두마디 동기가 모든 악기를 통해서 계속 반복된다고 했었는데, 동기란 형식 관점에서 본 것이고, 요소 관점에서 볼 때 이 선율적 패턴은 하나의 음형인 것입니다. 수많은 음악들은 결국 이 음형이 반복되는 것이죠.

음형처럼 선율에 포함된 리듬은 후방에서 곡의 하부 구조를 지탱하는 리듬 패턴과는 다르게 전방에서 매우 복잡한 모양을 띨 수도 있습니다. 쇼팽의 연습곡 (etude) 이나 야상곡 (nocturne) 등의 피아노 곡들이 좋은 예 같은데, 왼손은 규칙적인 리듬을 연주하고 이것을 기초로 오른손으로는 음을 장단으로 적절히 분할하고 다양한 리듬을 더하여 연주합니다.



<이별의 노래> 로 알려진 가장 아름다운 선율의 에튀드 <op.10 no.3> 나 녹턴 <op.9 no.2> 같은 곡들을 보면, 에튀드 <op.10 no.3> 에서는 왼손이 2/4 박자의 규칙적인 리듬으로 반주를 하고 오른손으로는 그 위에서 음형을 반복하고, 12/8 박자의 녹턴 <op.9 no.2> 에서는 왼손으로는 '123 223 323 423' 을 연주하고 오른손으로는 짧게 또는 길게 좀더 세분화된 다른 리듬 패턴에 섬세한 선율을 더하여 연주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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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글에서 그루핑 현상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악센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악센트는 리듬을 좀더 다이나믹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죠. 보통의 경우라면 한마디의 첫 박은 강조된다고 했습니다. 가령 3 박자의 경우라면 대개 "강 약 약 | 강 약 약" 이런 식이죠. 그러나 이렇게 단조로운 주기적인 반복만 계속 된다면 곡의 흐름을 재미없게 만들 수 있습니다.

어떤 음을 강조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죠. 우선 큰 소리가 나도록 세게 연주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고 또는 길게 연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짧은 음에 비해 상대적으로 악센트가 실리기 때문이죠. 또한 음높이가 확 변해도 악센트가 들어갈 수 있고, 장식음 때문에 들어가는 경우도 있으며, 박자와는 관계없이 가사 전달의 필요성 때문에 주기적인 악센트가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어쨌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단조로움을 피하는 방법으로는 정해진 위치에 기대되는 악센트를 의도적으로 이동시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규칙적인 리듬감이 흐트러지고 혼돈이 오고 따라서 일종의 흥분까지 가져 오기도 하죠. 당김음을 사용하거나 곡 중간중간에 계속해서 박자를 바꿔 버리거나, 또는 선율에 규칙적으로 또는 불규칙적으로 다양한 악센트를 주어 어떤 특정 형태를 가지도록 하는 등의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약박에 악센트를 주고 강박 위치까지 지속시키거나 또는 약박과 강박을 붙임줄 (tie) 로 연결하여 그루핑에 대한 기대감을 깨는 당김음 (syncopation) 은 악센트 이동의 좋은 예이죠. 당김음을 사용함으로서 리듬감에 다이나믹함과 추진력이 발생합니다.

앞마디의 마지막 음과 뒷마디 첫음을 붙임줄로 연결하여 뒷마디 첫음은 연주를 하지 않고 앞마디 마지막 음을 지속시켜 '강'박이 앞마디의 '약'박 위치로 악센트를 이동시키고 규칙적인 리듬의 기대감을 흐트러뜨리는 베토벤의 <교향곡 9번 op.125> 의 4악장 합창은 좋은 예죠.

또한 밀로스 포먼 감독의 1984년 작품 <아마데우스> 에서 살리에르가 자살을 시도하는 오프닝 크레딧 장면을 비장하게 흐르는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 in G minor, K.183> 의 경우에는 도입부부터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다음과 같이 변칙적인 리듬을 사용하고 당김음을 도입함으로서 대단한 긴장감을 유발시키면서 중간중간 이 리듬 패턴을 사용합니다.


또한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 in Bb minor, op.23> 의 1 악장에도 당김음이 나옵니다. 현악 파트의 선율 진행상 갑작스런 도약과 하강이 여러 번 등장하는데 첫박에서 갑자기 도약된 두번째 박으로 악센트가 이동하여 발생하는 당김음의 경우에 해당하죠. 또한 피아노도 옥타브로 진행하는 심한 도약이 사용되고 있어 역시 도약된 박으로 악센트가 이동하게 됩니다. 아래의 예는 피아노 부분이 나오는 부분부터 그린 것입니다. 윗 성부는 현악, 아래 성부는 피아노 .


춤을 추기 위한 것이 아닌 듣는 음악에서 "하나 둘 세 둘 둘 셋 ...", " 강 약 약 강 약 약 ..." 이렇게 딱딱 규칙적으로 박자를 세고 주기적으로 악센트를 주는 방식은 어떻게 보면 참 재미없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대부분의 음악에서는 이러한 규칙을 어떻게 흐트러뜨리는가, 라는 것이 중요한 것기도 하죠. 선율에서나 리듬에서나 그리고 화성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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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에도 리듬이 있다고 했지만 실은 화음 진행에도 리듬이 있습니다. 가령 으뜸화음은 얼마마다 나와야 하며 딸림화음은 얼마마다 나와야 하는가, 같은 문제 말이죠. 즉 하모니도 그 변화의 시간적인 단위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코드 진행을 만들 때에도 마디 단위로 화성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한마디 안에 여러 개의 화음을 사용할 것인가 등등에 대해 고민해야 하죠.

그리고 이 코드 진행 패턴도 여러번 반복되는데, 이 경우 코드 진행 자체를 하나의 리듬 패턴으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역시 지루하지 않기 위해서 변화가 필요하겠죠. 선율에서 하나의 음이 지속하는 동안 화음을 계속 바꾸면서 긴장감을 유발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 아니면 음 하나 하나에 화음 하나를 부여하여 보다 역동적인 화성적 리듬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화성적 리듬 이외에도 형식 관점에서 볼 때 어떤 마디가 강조되어야 하는가, 라는 구조적인 리듬도 생각해 볼 수 있다고 하네요. 하여간 리듬 이야기를 너무 오래 한 것 같아 이쯤에서 접고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리듬에 관한 이야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2009년 10월 25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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