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감독들이 만드는 호러 영화들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스페인 내전에 관한 이해가 매우 중요하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고 처참했다는 그 피비린내 진동했던 스페인 내전, 그리고 이 내전을 이기고 1939년부터 폭정을 시작하여 1975년 죽을 때까지 30년 넘게 스페인을 독재의 암흑기로 가두었던 파시스트 프랑코 ... 스페인이 그 내전과 파시스트 독재의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앞으로도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 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그때의 공포의 트라우마에 관한 영화가 지속적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아직도 스페인은 아파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프랑코 독재시대에 만들어진 빅토르 에리체의 <The Spirit of Beehive>, 그리고 알레한드로 아메나바르의 <The Others>, 페드로 알모도바르가 제작에 참여하고 길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한 <Devil's Backbone>, 알폰소 쿠아론이 제작에 참여하고 역시 델 토로가 감독한 <Pan's Labyrinth>, 그리고 그 길예르모 델 토로가 제작하고 후안 안토니오니 바요나가 감독한 <The Orphanage, El Orfanato> 까지...


이 영화들을 보면 그 포괄적 특징으로 볼 만한 것들이 나온다. 어떤 정체불명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는 집이 나온다는 것과 상처받은 아이들과 유령이 나온다는 것... <오퍼나지>는 명백히 이들 영화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아주 간략하게 풀이하자면, 집을 스페인으로, 그리고 정체모를 그 집에 내재하는 공포의 대상을 파시스트 프랑코, 그리고 공포 자체를 스페인 내전과 독재의 시기로 이해하면 어떨까 싶다.

이 영화들은 호러 장르에 드라마를 엮은 영화들이다. 관객들에게 공포를 선물해서 더위를 떨치라는 납량 특집물같은 Scary Movie 는 아니라는 거다. <오퍼나지>에도 현실의 두려움의 도피처로 일종의 판타지가 등장하긴 하지만, <판의 미로>에서 처럼 환상세계가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리고 <오퍼나지>에서는 이렇다 할 특수효과도 사용되지 않는다. 공포도 서스펜스에서 나오고 있다.

델 토로 감독은 <판의 미로>를 <데빌스 백본>의 속편격이라고 했지만, <데빌스 백본>의 설정을 거의 그대로 가져 온 것이 사실은 <오퍼나지>이다. 세부적인 묘사는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둘다 고아원이 나오고, 유령보다 무서운 공포의 존재가 그곳에 있고, 그곳에 사는 소년이 나온다.

<데빌스 백본>은 정말 무서운 영화다. 그리고 <오퍼나지>도 정말 무서운 영화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 무섭다는 것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한다. 만약 <화려한 휴가>를 호러영화로 만든다면 이와 비슷하게 만들어야 할지도 모른다.


로라는 의사인 남편 카를로스와 7살짜리 꼬마 아들 시몬과 함께, 자신이 입양되기 전까지 어린 시절을 보낸 고아원이기도 했던 바닷가의 한 저택으로 이사를 오게 된다. 시몬은 HIV 양성 보균자로 로라 부부는 시몬을 아기때부터 입양해서 키우고 있었다. 시몬의 건강때문에 로라는 이 저택으로 이사를 오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시몬같이 아픈 고아들을 돌보는 집으로 만들고 싶어서 온 것이기도 하다.

7살짜리 꼬마 시몬은 이 저택에서 로라에게는 보이지 않는 아이들을 만나게 된다. 로라에게는 보이지 않는, 그러니까 로라가 생각하기에는 시몬의 상상의 친구들 정도로 여겨지는 아이들인데, 그들 중에는 토마스라는 아이도 있다. 얼굴이 기형이라 천을 뒤집어 쓰고 다니는 아이...

그러던 어느날, (영화로써는 기승전결의 "기" 정도가 끝난 시점에서) 시몬은 갑자기 사라진다. 실종 6개월이 지나도 시몬의 행방은 알 길이 없다. 게다가 시몬은 건강한 아이가 아니라 정기적으로 약을 복용해야 하기 때문에, 로라는 더 다급하고 초조해 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거의 이성을 잃은 듯한 로라를 관객은 더 근심어린 눈길로 바라 보게 된다. 시몬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걸까? 사실, 현실적으로 보면 병든 시몬이 약도 없이 6개월 이상을 살 수는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로라와 관객은 살아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기대가 영화를 이끌어 가는 힘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기대가 스페인을 이끌어 나갈 힘이길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화 <오퍼나지, El Orfanato>의 나머지에는 로라가 미친 듯이 시몬을 찾아내려 애쓰는 그 눈물겨운 과정이 담겨 있다. 그리고 관객은 그 과정 속에서 섬뜩한 영상과 공포스러운 사운드를 버텨 내어야 하고, 로라가 빨리 시몬을 찾기를 초조하게 기다려야 한다. 빅토르 에리체 감독의 <벌집의 정령>이 5살 꼬마아이의 눈으로 본 스페인 내전의 어둠의 그림자이었다면, 시몬의 눈을 통해 본 그 고아원과 아이들은 무엇이며, 우리는 왜 그를 다시 찾기를 기다리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기다리던 "결"에 이르게 되는 순간, 그러나 기대한 것처럼 공포는 해소되지 않는다. 이 부분은 아마도 <판의 미로>의 결말과도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서스펜스와 공포는 허무하고 잔인한 슬픔이라는 반전으로 오버랩되는데, 곰곰히 영화를 돌이켜보면 그 사운드에서 뿜어나오는 그 공포의 원인을 알 수 있을 것도 같아, 이 결말 부분은 무척이나 슬프다.

영화는 <판의 미로>처럼 공포와 슬픔이 교차한다. 그러니까, 보통 앞면은 공포, 뒷면은 코미디인 종이 한장 같은 헐리우드 공포물과는 달리, 이런 영화는 앞면에는 공포가 쓰여져 있고 뒷면을 통해서 보면 슬픔이 배어나는 영화라는 거다. 영화가 끝나면 무서워서 우는 게 아니라 슬퍼서 울게 된다.

위에 올린 영화 포스터에서 보면 로라가 서 있고, 그 뒤로 유령처럼 보이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다. 천을 뒤집어 쓴 아이가 토마스다. 이 아이들은 자신들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 곳인 고아원에서 죽었다. 아이들의 놀림을 받던 토마스가 죽고, 그 죽음에 대한 복수로 아이들이 죽는다. 아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존재에서는 공포를 느껴야 하지만, 그 유령의 아이들에게는 슬픔만이 남아 있다.

시몬은 30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그때의 그 아이들로 남아 있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눈 것이었다. 시몬이 만났다고 이야기할 때 무심코 흘려 듣고 초자연적인 현상으로 믿지 않았었던 이 아이들의 존재... 그러나 로라는 결국 이 아이들과 만남을 통해서 시몬에 대한 결정적 단서를 찾게 되기도 한다. 그러니까 시몬도 아이들을 만났지만, 로라도 아이들을 만났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왜냐하면 그 아이들은 로라의 친구들이기도 한 아이들이었고, 30년 전 그때의 슬픔을 간직한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약자인 아이들은 지켜지지 못한다.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하고 죽음으로 몰고가는 상황은 어른들의 책임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죽음을 보는 어른들은 공포를 느끼면 안된다. 어른들은 눈물을 흘려야 한다. 로라는 죽은 아이들, 그러니까 자신이 그 고아원에 있을 때의 친구였던 그 아이들을 보고 눈물을 흘린다.

서두에도 이야기했지만 여기서의 아이들, 시몬, 그리고 고아원이 가지는 의미를 곰곰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꼭 스페인의 프랑코 독재 시대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비슷한 6.25 와 군부 독재를 경험한 우리나라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이며, 피로 물든 폭력 위에 세워져서 점점 더 커가는 폭력을 후세에게 물려주고 있는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생각된다.

그러니까, 아무 이유없이 희생당하는 사회적 약자들과 그들을 보호하지 못한 사회는 그 한 시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유산으로 남겨져 지금도 그때의 그 비극이 다시 되풀이될 수 있음을 영화는 이야기하고 있다는 거다.

참고로 영화에서 로라가 아이들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서 부르는 어떤 영매 할머니가 등장하는데, 이 분은 찰리 채플린의 딸이기도 하다.

2008년 2월 26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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