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도미니크 보비는 새 BMW 에 아들을 태우고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 를 들으며 달렸다. 얼마를 달렸나...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이 갑자기 온 몸을 덮쳤고, 그는 아들 옆에서 정신을 잃었다. 3주가 지나 깨어났을 때 그는 프랑스 바닷가에 있는 베르크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는데, 생각하고 상상하는 능력과 왼쪽 눈을 깜빡일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제외하고는 온몸이 마비되어 있었다. 이때부터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아야 했다.



1997년 3월, 그 새로운 삶의 기록이기도 한 <잠수종과 나비>라는 책이 프랑스 전 서점에 등장했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의 유명한 저널리스트이자 <엘르> 편집장이기도 했던 장 도미니크 보비다. 등장하자마자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키며 단숨에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이 나온 후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세상을 떠났다.

그러니까 <잠수종과 나비>는 장 도미니크 보비가 바다가 보이는 프랑스 베르크 병원에서 보낸 15개월 동안의 상상과 아버지, 가족, 연인, 친구, 동료 들과의 삶에 대한 추억을, 왼쪽 눈을 깜빡이는 것만으로 의사소통하여, 받아 적는 이로 하여금 알파벳 하나 하나를 써내려 가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다.

그리고 10년이 지나 만들어진 영화 <잠수종과 나비> 는 관객으로 하여금 카메라를 들고 장 도미니크 보비의 몸 안으로 들어가게 해서, 그의 왼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게 하고, 그리고 상상을 체험하게 한다. 관객은 장 도미니크 보비처럼 세상을 바라 볼 때는 잠수종을 입게 되어 조금은 답답해야 하고, 상상할 때는 나비처럼 자유로울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이 지향하는 바는 좀 다르지만 <Sea Inside> 와도 언뜻 연결되는 부분도 있다.



잠수종을 입은 것 같이 꼼짝 못하는 몸 때문에 왼쪽 눈으로만 제한된 앵글을 보아야 하고,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상대방이 나열해 주는 알파벳을 들으며 원하는 것이 나오기를 기다렸다가 왼쪽 눈을 깜빡여 단어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세상과 소통하기가 한마디로 답답하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건 전혀 아니다. 조금 느리긴 하지만 왼쪽 눈을 깜빡이면 되니까... 머리 속으로만 있던 수많은 상상과 추억의 문장을 만들고 문단을 만들고 그리고 깜빡임만으로 책을 만들어도, 그 책에는 번데기에서 방금 빠져 나온 아름다운 나비같은 그의 상상과 추억이 온전히 담겨질 수 있음을 영화는 보여준다.

영화는 책에 매우 충실하게 만들어졌다. 책에 묘사된 장 도미니크 보비의 상상도 거의 그대로 재현해 내고 있지만,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그런 영상은 아니다. 책의 마지막 챕터 제목은 비틀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 <내 삶 속의 어느 하루>인데, 영화의 마지막 챕터도 새차를 타고 달리다 혼수상태에 빠지는 그 순간을 담고 있다. 연인과의 루르드 성지순례, <몽테 크리스토백작>, 하얗고 빨간 등대, 병원 후원자였던 나폴레옹 3세 부인 외제니 황후에 관한 상상... 등도 또한 매우 세밀한 영상으로 묘사되어 있다. 꼭 책을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책을 보고 난 후의 영상이 상대적으로 더 아름다울 것으로 생각되므로 책보기를 권한다.


책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연민이 비교적 담담하게 기술되어 있는데, 영화에서는 아마도 가장 극적이며 아름다운 장면으로 다가온다. 글쎄... 책을 보고 떠올린 내 상상의 건조함에 대한 부끄러움일까? 아니면 <정복자 펠레>에서 펠레의 아버지이기도 했던 그 노년의 막스 폰 쉬도우의 울먹울먹한 목소리 때문인지 눈물이 흐르기도 했다. 잠수종에 갇혀 있는 듯한 답답함이 괴로운 아들이, 거동이 불편한 탓에 4층에 갇혀 지내다시피 하는 아버지도 잠수종에 갇혀 있는 것 같다며 슬퍼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영화는 음악이 또한 아름답다. U2 나 Tom Waits 의 음악조차도 아주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보다는 자세를 낮추어 그 영상에 충실히 봉사함을 선택하는 듯하며 영상미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나즈막히 속삭이는 것 같다. 그리고 책 마지막 장의 내용은 비틀즈의 곡 <A Day in the Life> 의 그 독특한 가사와 엮여 있어, 마지막 장면에서 비틀즈의 음악이 영화 중에 나오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그렇지는 않다.


작가는 상상한 것을 글로 표현하고, 독자는 그 글로써 작가의 상상을 공유하는 것이 "책"이라면, 원작이 있는 영화는 그 원작의 상상을 한번 재현해 본 것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영화가 보여주는 영상이 여러분이 책을 읽을 때 떠올렸던 장면보다 촉촉하고 아름다운가? 아마도 깐느와 골든 글로브는 그렇다고 판단해서 감독에게 감독상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곧 있을 2008 미국 아카데미에 감독, 촬영, 각색 부문 등이 후보로 오른 것은 좀 특이할 만한 부분이다. 뉴욕 감독이긴 해도 대사가 불어이고 주연도 미국배우들이 아닌데...

2008년 2월 15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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