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도 마찬가지겠지만 TV 라는 윈도우를 통해서 연예인들이 팔고 있는 것은 정말로 뭘까, 라는 생각을 가끔 한다. ('드라마'와 반응한 역할의 이미지 말고 그 '연예인' 자체로서 팔고 있는 것을 말하고 있다.) 드라마건 오락프로건 상관없이 그들 대부분은 그들의 성(性)을 판다, 는 것은 틀린 말이 아니다. 대부분의 드라마에서 여자 배우는 여性을, 남자 배우는 남性을 판다. 그렇지 않다면 배우들의 외모가 모두 예쁘고 잘 생길 이유가 전혀 없다. 극중 배우가 완전히 사라질 때 상품으로서의 性도 사라진다. 그리고 여기서 性은 포괄적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난 까놓고 말해서 그 파는 상품만 놓고 본다면 룸싸롱에서 위스키 따라주는 언니들과 드라마에 출연해서 여性을 파는 여자 배우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차이가 있다면 여배우의 여性은 역할 이미지에 의해 한겹 둘러져서 상대적으로 보호를 받으며 대량 판매되지만 바텐더 언니들은 그런 보호없이 유료로 나를 상대로 연기한다는 것. 이것은 호스트바에서 위스키 따라주는 오빠들과 TV 에서 남性을 파는 남자 배우의 차이에 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TV 에서 여자 배우가 남性을 파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것은 우리나라 드라마가 정말로 지양해야 할 것 중 하나로 그 정도가 매우 심각하다. 사실 TV 드라마만큼 그 性 역할 고착화에 탁월한 콘텐츠도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TV 드라마는 남자 입장에서 볼 때 마초를 길러내는 산실이다. 방법은 두가지. 카리스마와 힘을 동원해서 어려운 일을 해결하도록 하며 남자들을 아주 거칠게 보여주거나, 갖은 눈물과 情과 恨을 동원해서 여자들을 더 찌질하게 보여주거나, 아니면 두가지 다 동원하거나.

전자의 대표성을 띤 집단이라면 '군대'를 들 수 있고, 후자의 대표성을 띤 집단이라면 '술집'을 들 수 있다. 전자는 남자들만 우글우글대는 사회로 마초로 키워져야만 하는 곳이며, 후자는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성으로부터 접대를 받으며 역시 마초로 키워지는 곳이다. (이 의미에서 본다면 대부분의 가부장 '가정'도 '술집'과 다를게 없다.) 온 나라가 못살겠다 아우성인데 서울 곳곳의 술집은 불야성이다. 마초性이 아주 강하게 풍기는 곳이기 때문이다.

돈많고 늙어서 마초적 기질 드러내고 싶을때 갈 수 있는 곳 예쁜 언니들이 시중드는 룸싸롱같은 고급 술집 말고 또 어디가 있지... 군대가 '의무'로 마초로 길러지는 곳이라면 '룸싸롱'은 돈으로 마초성을 사는 곳이다. 여기서 반대의 설정을 한번 해보자. 잘생긴 오빠들이 접대하는 소위 '호스트바' 에 가는 '돈많은' 여자들은 그러면 그곳에 왜 가는 걸까?  그리고 그곳에서 접대하는 남자의 마초적 기질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윤종빈 감독의 두번째 장편 <비스티 보이즈 2008> DVD 를 얼마전 구입하고는 이런 관점에서 어제 보았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여자들에게 있어 그곳에서 술을 마시는 행위는 일종의 마초 사회로부터의 도피 및 환각에 지나지 않으며 여性이 남性화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곳에서 접대하는 남자들에게는 호스트바가 역시 마초 사회로부터 잠시 벗어나서 여性의 마초 사회로부터의 그 도피 대금으로 지불되는 거액의 돈을 거두어 들이는 기회주의적 사회라는 것, 이다. 결국은 그놈의 '돈'과 '폭력'이 문제다. 마초적 기질의 베이스이기도 한 그것들. 호스트바에 가는 돈많은 젊은 여자들 중 주요인물이 술집에서 일하는 여性들로 설정되어 있다.



남性이 여性에게 가하는 폭력과 쌍욕설이 난무하는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는 아주 재미있게 보았고, 아주 잘 만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대한민국 대표배우가 되버린 하정우, 윤계상, 윤진서, 그리고 윤종빈 감독, 이라는 대충 봐도 '1하 3윤'의 또래 집단이 만들어 낸 '젊은 영화'라는 생각이다. 지독하게 남性을 다룬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초적 남성 사회에서 당연 권리를 누리는 남성 (또는 기성 세대) 들과 그 안에서 힘겨워 하는 여성 (또는 젊은 세대) 을 잠시 그 역할이 뒤바뀌는 '호스트바'라는 공간으로 밀어 넣어 일탈과 도피를 꿈꾸게 하지만, 이미 지독한 남성의 사회 내부에서 만들어진 그 '룸' (술집 공간) 에서 기껏 꿀 수 있는 꿈은 그 룸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순간 순식간 깨져 버릴 뿐이다.

더구나 그 남性으로부터 보호되어져야 하는 지원 (윤진서) 의 '룸' (집) 과 한별 (이승민) 의 '룸' (집) 도 승우 (윤계상) 과 재현 (하정우) 로부터 침입당하고 그들이 마구 휘둘러대는 '돈과 폭력'이라는 쌍절곤으로 점령당한다. 분명히 존재하는, 아니 어쩌면 지배적일지도 모를 우리 사회의 이런 모습에 다시 한번 한숨을 쉬게 되고 윤종빈의 시각과 관점이 틀리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작품은 윤종빈의 전작 <용서받지 못한 자 2005> 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면 딱 맞을 듯 하다. <용서받지 못한 자> 는 '군대' 라는 남자들이 우글대는 이상한 마초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름의 합리적 자의식으로 비합리성에 저항하다가 부딪히게 되는 딱딱하고 높은 벽, 때문에 겪게 되는 혼란, 갈등, 두려움, 적응에 대한 공포가 표현되어 있다. 이 작품에서도 역시 하정우는 군대 문화를 적절히 습득하고 잘 적응하고 강한 남性을 인정해 나가면서 마초로 길러지는 전형적 남자로 등장한다.

<비스티 보이즈> 에서는 '군대'가 아닌 '청담동 고급 술집가'가 그 무대지만 작동원리는 동일하다. 다만 <용서받지 못한 자> 에서의 이승영은 <비스티 보이즈> 에서의 지원으로 등장한다. 차이가 있다면 <비스티 보이즈> 에서는 남性이 여性에 대한 직접적 가해자로 등장하고, <용서받지 못한 자> 에서는 非남性이 남性에 에 의해 더 이상 갈 곳 없는 막다른 곳까지 몰린다,는 것이 다르다.

그리고 윤진서가 출연한 영화는 처음 봤는데, 그녀에 대한 연민이 마지막 여운으로 남는다.


2008년 9월 22일 작성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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