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출근과 등교시간, 버스와 지하철에서, 가방을 둘러 맨 대학생들과 말쑥하게 정장을 차려 입은 젊은 직장인들, 그리고 그들 손에 펼쳐져 있는 조중동을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러면 그들의 얼굴을 한번 흘깃 보게 됩니다. "생긴 건 멀쩡한데... ㅉㅉㅉ"

그 지면을 채우고 있는 텍스트들의 대부분은 이 땅의 대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이 읽기에는 너무 늙고 병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진보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난 과거를 모두 잊고자 하는 치매에 걸린 글들입니다. 과거가 없어지면 미래가 없으니까.

그들의 텍스트는 먹지 못해 허기진 경험이 없는 사람이 늘어 놓는 배고픔의 고통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습니까? 배고픔이라는 개념 자체가 무엇인지를 모르는 배부른 자가 늘어 놓는 배고픔에 관한 궤변을 말입니다. 그 콘텍스트는 철저하게 기득권자의 관점입니다.

이 사회의 기득권자가 아니면서 이 블로그에 방문하는 여러분은 조중동같은 미디어에 세뇌당하지 마세요. 끊임없이 질문하십시오. 그리고 '세뇌'로부터 안전한 미디어는 대한민국에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꼭 명심하여야 합니다. <미디어에 세뇌당하지 않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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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 C 가 오랜만에 만났다. A 와 B 는 최근 새로 구입한 핸드백을 들고 나왔다. A 의 것은 악어가죽에 번쩍거리는 다이아몬드 몇 개 붙어 있고, B 의 것은 헝겊짝에 반짝이는 큐빅 몇 개 붙어 있다. 마침 어떤 핸드백을 살까 고민 중이던 C 는 B 의 것이 괜찮아 보였다. 저렴할 것 같아서가 아니라 그것은 소위 유명 브랜드 명품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한 소리다. 다이아몬드를 덕지덕지 붙인다고 해서 명품이 되는 것이 아니다. 제조원가를 높인 비싼 상품에 불과할 뿐이다. 명품으로 향하는 길은 다르다. 우리가 말하는 '명품'이란 유형이 아닌 무형 가치의 대상이다. 그리고 사람들의 짝퉁 구매는 그 "무형의 가치"를 값싸게 획득하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한다. 생각해보면 신기하다. 물신숭배사회라는 것이.

무형의 가치란 것이 원래 그런건가 보다. 상대방이 속거나 아니면 나만 만족해도 어쨌건 가치는 획득된 것이니까. 진품의 가치라는 부분은 좀 다른 이야기로 과시하기 위한 것이 아닌 순전히 소유에 대한 욕구 차원이라면 그것은 좀처럼 해결하기 어려운 '피곤한 욕구'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어쨌건 핸드백을 만들어 돈을 벌고 싶다면, 물건 자체에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을 할 것이 아니라 핸드백의 개념을 눈에 보이지 않는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어야 한다. 욕망은 다른 어딘가에 있고 적어도 보석과 함께 있지는 않다. 돈은 이렇게 버는거다. 그리고 물건 자체보다 사람들의 의식 자체를 건드리고자 하는 마케팅의 세뇌 욕망에 물건과 미디어는 공생관계가 된지 이미 오래다.

사람들은 왜 눈에 보이지도 않는 그 무형의 가치를 원할까. 우리를 세뇌하고 싶어하는 기업과 미디어의 욕망에 따라 우리의 의식 속에서 무엇인가 無가치에서 有가치로 변화한다. 가치가 생성되긴 하는데 형태는 없다. 형태는 우리의 의식 속에서만 발현된다. 아무도 모른다. 그런 가치를 구입하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돈을 지불한다.

사람들은 '명품'의 가치를 좋아한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핸드백에 다이아몬드 아무리 많이 박아봐야 사람들은 핸드백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다이아몬드만 떼어낼지 모른다. 사람들은 악어가죽에 다이아 박은 무명제품보다 헝겊 쪼가리로 만들고 루이비똥 딱지 붙인 제품에 가치를 부여하고는 소중히 한다. 가치란 것이 원래 그렇다. 전자에 어떤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나. 그것은 다이아몬드의 가치일 뿐이다.

사람들은 이 '가치'라는 것에 그만큼 잘 속는다. 미디어를 통한 물신숭배와 세뇌사회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어쨌건 여기서 '속는다'는 것의 부정적 의미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접촉보다는 인상이 효과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이미지를 심는 데에는 소개팅보다는 채팅이 효과적"이라는 말과도 비슷하다. 보여주지 않고 이야기만으로 상대방은 알아서 마음 속에 무형의 가치를 생성해 낼 것이다. 돈 벌고 싶은가? 그렇다면 이미지를 심어 주면 된다.

***

나는 일류와 삼류의 차이를 이렇게 본다. 일류는 헝겊과 큐빅으로 제조해도 상대방으로 하여금 욕구를 불러 일으키지만, 삼류는 가죽과 다이아몬드로 제조하여 던져 놓고 상대방으로 하여금 부담을 느끼게 한다. 문화, 예술, 정치, 경제, 사회... 해당되지 않는 것은 없다. 눈으로 확인되는 비싼 가시성은 삼류가 추구하는 바요, 마음으로 느끼는 만족감은 일류가 추구하는 바다. 명품이라는 것이 그렇듯이.

일류를 지향한다는 세상의 수많은 기업이나 조직들이 있지만 '일류'라는 가치는 결코 단기간에 발생하지 않는다. 불가능하다. 미녀와는 3개월을 살고 양처와는 평생을 사는 법이다. 보통 삼류들이 가능하다고 믿고 단기성과에 목숨을 걸면서 그 "단기의 가치"를 일류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정작 일류를 떠드는 집단 중에서 일류는 없고 까보니 삼류인 경우가 많다. 삼성과 정부 여당 등이 아주 대표적인 조직들이다.

마찬가지로 나 스스로 일류가 되기를 원한다면 길게 보아야 한다. 가령 직장이 아닌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에 가치를 부여하여 생계가 아닌 인생을 볼 필요가 있고, 배우자를 선택할 때에도 외모라는 단기속성보다는 성품이라는 장기 속성을 볼 필요가 있다. 일류의 삶이라는 것이 아마도 이럴 것 같다. 길게 보는 것. 나는 내 경험을 통해 (직장이 아닌) 직업이 없는 사람은 불행할 삶을 살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을 아주 뼈저리게 깨닫기도 했다.

주위를 둘러 보면 눈으로 확인되는 단기 가시적 성과에 목숨을 거는 이들이 대단히 많고 그들에 의해 이끌려 가는 조직이 대단히 많고, 그 조직에 의해 이끌려가는 국가도 대단히 많다. 직업이 없으면 필연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그들에게 봉사하게 된다. 관료제라는 것의 한계일 수도 있을 것이고, 요즘같이 사람의 가치가 물건보다도 못한 시대를 사는 우리들의 불행일 수도 있다.

가치라는 개념에 대해 정확하게 파악하고 길게 보는 일류와는 달리 삼류는 참 짧게 본다. 짧게 보는 이들을 상사로 모시는 부하직원은 필히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 대개 조직이 엉망진창임에도 어지간히 유지되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이전에 만든 가치가 그 조직을 지탱하고 있기 때문인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그렇게 오래가지는 못하겠지만.

초단기 가시적 성과주의에 올인하는 나라에 사는 한 사람으로서 이 세상은 참으로도 하루하루가 안타깝다. 가치는 매몰 중이다. 명품을 만들고 일류가 되기는 커녕 짝퉁에다 다이아몬드 잔뜩 받아 놓고서는 "우린 일류다" 라고 외치는 집단 때문에 사람들과 나라가 삼류를 넘어 저질이 되는 것도 이제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

핸드백을 보고 명품인가 그냥 비싼 물건인가, 누군가를 보고 일류인가 삼류인가, 라는 판단을 내릴 때에는 실은 내 마음 속에 존재하면서 나의 의식을 지배하는 그 무형의 가치 체계가 외부에 투영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MB 집단은 "바로 내 눈 앞에 놓인 결과물만이 결국 최종善" 임을 믿고 명품으로 가는 험난한 여정에서 획득하는 무형의 가치를 내팽개치는 그런 군상들의 모임이기 때문에 행여나 그들의 의식수준과 오랫동안 상대하면서 그들의 물신숭배사상에 투영된 나의 가치체계가 왜곡되어 보이는 것을 보고 화들짝 놀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다. 눈 감고 살 수는 없으니까.

이 놈의 정부는 왜 사람들의 의식 속에 가치를 생성토록 하지 않고,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결과물을 보여주며 자신들이 뭔가를 해냈다,라고 자랑하려고만 드는지. 참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저열하고 저열함을 발견할 뿐이다. 이 산을 저 산으로, 저 산을 이 산으로 옮기면서 나랏돈이나 축내고 먼지나 풀풀내어 모든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면서도 여전히 일류와 삼류의 차이도 모르고.

하긴 뭐 짝퉁을 팔고도 만족감을 주었으니 선이 아닌가, 라면 할 말 없지만 사람들이 만족감을 못느끼고 짝퉁인 걸 알아 버렸으니까 문제지. 그럼에도 여전히 자신이 판 것은 짝퉁도 아니고 만족감도 주었다고 미디어를 통해 세뇌를 하는 것을 보면, 참 역시 먹고 튀는 짝퉁과 사기꾼들의 그 생명력과 의지는 의외로 길며 인정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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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S영화사 마케팅 담당자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다. 참고할만한 몇가지 팁도 있고 수긍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고. 수긍한 내용 중 하나는 <디 워> 마케팅에 관한 부분이다. 그 담당자의 이야기를 내가 이해한 바로는 "그야말로 수렁에서 건져 낸 영화" 였다.

완성품을 접하고 보니 답답했고 수준 미달에 논란의 소지가 많아 보였다. 그러나 이미 엄청난 거액이 들어간 상태. 고도의 홍보 마케팅 전략이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어느 정도 의도된 "CG vs. 스토리 논쟁" 으로 대부분의 미디어를 점령하여 다른 영화가 끼어 들 틈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러한 대대적인 노이즈 마케팅과 함께 영화의 본질적 논란으로부터 대중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바보 코미디언에서 영화 감독으로의 변신이라는 인간 승리" 이야기를 만들어 애국심/민족주의 마케팅과 결부시켰다. 그래서 <디 워> 는 홍보/마케팅에서 보면 주요 성공사례에 들어간다. 완전 개천에서 용 냈으니까.

영화는 그저 "일회성 소비재"라는 철저한 비즈니스 마인드로 대중으로 하여금 "어떻게 해서든 한번 보게 만들면 된다" 라는 와이드릴리즈 전략으로 접근했다고 한다. 아쉽게도 국내 영화사 상당수가 이러한 마인드로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한다. 실무자들의 영화에 대한 이해 수준 자체가 상당히 저급한 회사들이 대단히 많다. 얼마나 끔찍한 현실인가. 지금 우리나라에서 영화는 영화가 아니다.

어쨌거나 각종 매체를 통해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도로 "감독의 인간승리" 이야기로 대중의 동정심을 자극하고 여기에 애국심을 강요하는 식의 홍보 전략과 영화의 질적 논란에 논란을 거듭하게 만드는 노이즈 마케팅을 십분 활용했다는 것이 그 이야기였다. 내가 이해한 바로는. 아직도 "우리는 철저하게 농락당했다"는 걸을 깨닫지 못하면 진짜로 심각한 거다. 이 사회는.

***

<디 워> 는 수백억짜리 문화적 쓰레기다. 스토리없는 그래픽의 공허함, 철학없는 기술의 초라함, 가치관이 배제된 테크놀러지의 철없음, 교양없는 연출가의 무지와 독선, 의식없는 비즈니스맨의 무모함과 위험성, 이론없는 실기의 그 멍청함,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의 엄청난 낭비... 그 해악을 이루 헤아릴 수가 없다. 제작자건 관객이건 인문학 교육의 중요성을 정말 뼈절히 느끼게 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MB 정부는 이 <디 워>와 너무 닮아 있다.

워쇼스키의 <매트릭스> 가 그토록 강조한 것은 이거였다. 영화의 엔딩을 흐르는 RATM 의 외침처럼 "깨어나라" 라는 것. "너의 생체 에너지를 빨아먹는 대가로 이 놈의 기계 덩어리가 너의 뇌에 주입시키는 환상의 실체를 알아?  빨간 약 먹고 깨어나서 이 빌어먹을 현실, 무서운 진실이 도대체 무엇인지 똑똑히 보라" 라는 것.

정부의 한예종 핍박은 그러니까 "깨어나라" 를 지극히 불순하게 보는 이 땅의 <매트릭스> 를 꿈꾸는 무리들의 위기의식에서 나온 적극적인 경고이자 행동이다.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잠들어라, 너희가 잠들어야, 너희가 진실의 문이 닫힌 환상 속에 안주하고 살아야 우리가 너희 몸에 빨대 꼽고 먹고 살 수 있다" 라는 거다.

<매트릭스>를 지키려는 입장에서 보면 "깨어나라"는 인문학과 교양의 영원한 주제였으므로 당연히 인문학/교양/이론 교육을 금지시켜야 한다. 기술을 강조하고, 실용을 강조하고, 실기를 강조한다. 따라서 실용 교육, 실기 강조, 는 다분히 허구다.

미국의 헐리우드를 착각하고 유럽의 고전음악을 착각하면 안된다. 그곳은 첨단의 기술이 후방에서 백업을 하는 덕에 무수한 상상이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는 교양의 천국이지 기술의 천국이 아니라는 거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돈도 번다. 비즈니스맨들도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한 뮤지션에게 있어 교양이 후방에 머물러 있으면 지금 한국을 점령한 그런 음악들만 계속 나오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기술이 "잠들어라"를 주장하는 이들의 사상적 억압의 도구로 활용되는 세상을 상상해보라. 그게 바로 <매트릭스> 다. 대한민국이 <매트릭스> 가 되기를 꿈꾸는 MB 정부, 아니 이제 정부라 부르기도 쪽팔린, MB 집단의 "이론보다 실기" 주장 "깨어나지 말고 잠들어라" 라는 교양과 상상과 예술에 대한 픽박을 보고 있노라면 분노가 턱까지 치민다. 그들이 입가에 발린 소리처럼 하는 상상과 창의는 그들의 언어가 아니다.

한예종을 핍박하고 이론없는 실기를 강요하고 교양없는 기술을 강조하면 이 땅에는 계속해서 <디 워> 와 무수한 야동만 만들어질 뿐이다. 따라서 비즈니스 맨들은 그러한 MB 집단의 마인드를 가지고 해외건 국내건 어디 가서 문화와 예술을 논하지 말길 마란다. 당신들의 면전에서는 헤헤 웃지만 뒤돌아서는 순간 그들은 침 퉤 뱉고 미소를 지우며 당신의 뒷목덜미로 이 한마디를 내뱉을테니까. "병신...".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그러고 있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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