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이미지의 차이가 뭘까" 

그림에 대한 이해는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 

나는 왼쪽 사진을 보고 오른쪽 그림을 그렸다. 

카메라는 왼쪽 풍경을 메모리에 기록했고 나는 그 풍경을 종이에 직접 그린 것이다. 

전자는 무슨 수를 써도 내 것이 될 수 없지만 후자는 온전히 내 것이 된다. 

나는 결코 내 것일 수 없는 풍경을 그림으로서 완전히 내 작품으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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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소설가이자 동화 작가인 김한민은 자신의 책 <그림 여행을 권함>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림을 그림, 꿈을 꿈, 삶을 삶... 명사이면서 동사인 이 말들은 결과와 과정이 동등하게 중요하기 때문에 가능한 말들..." 멋진 문구다. 그의 말대로 그림이 가지는 의미의 절반은 그리는 행동 그 자체에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림은 직접 그림으로서만 터득이 가능한 예술이므로 직접 계속 그리는 것 말고는 별 도리가 없다.  


나는 요즘 그림을 그린 후 가족 및 주변 지인들에게 보여 주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이 내가 그린 그림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림이 가지는 의미의 절반은 작품이 되어가는 과정 자체에서 발생했고 나머지 절반의 의미는 누군가에게 보여질 때 발생한다는 것을 이제서야 알게 된 것이다. 내가 그린 그림을 많은 사람들에게 더 열심히 보여주는 것이 그림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이 된다.  


선을 그리고 색을 칠한다. 똑같이 그릴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여야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나만의 작품을 만드는 것이니까. 나의 생각과 고민이 그려진다. 그렇게 완성한 그림을 통해 "나는 세상을 이렇게 바라보고 있어요"라며 사람들에게 소리없이 이야기한다. 네가 그린 그림, 내가 그린 그림을 함께 보며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고민을 엿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계속 그리고자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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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1학년, 까마득하다. 그 날 빼고는 기억이 없다. 미술 시간 어여쁜 교생 선생님이 들어왔다. 숫자 디자인을 그리라고 했다. 난 크게 숫자 2 테두리를 그리고 그 안을 여러가지 패턴을 반복해서 채워 넣고 색을 칠했다. 지금으로 치면 젠탱글에 가까운 스타일. 멋있어 보였다. 그 때 책상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아이들의 작품을 구경하던 교생 선생님이 내 옆에 섰다. "정말 네가 그린거니"   



이런 식으로 숫자 안에 패턴을 반복해서 그렸다  그 이후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나는 미술 시간을 사랑했다. "고3은 왜 미술 시간이 없나요" 담임 선생님께 따져 묻기도 했다. 아무 생각없이 집중해서 그림을 그리고 나만의 작품이 완성되는 경험에 예쁜 선생님의 칭찬까지. 내 평생 유일한 그림을 그리고 칭찬받은 이 경험은 지금까지도 나로 하여금 그림에 대한 끈을 놓치지 않게 했고 30년이 지나긴 했지만 처음으로 그림을 배우게 만드는 에너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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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찬받지 못할 그림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선을 긋고 색칠을 하는 행동 그 자체에 이미 그림의 의미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서의 그림은 그리는 이의 숫자만큼 다양할 뿐이다. 이미 발생한 그림의 의미 절반을 이해했다면 결과물은 멋있어 보이게 되어 있다. 나의 아이가 30년이 지나도 여전히 그림 그리기를 좋아할 기초 체력을 가지게 하고 싶다면 지금 이 말 한마디만 하면 된다.  "우와, 이거 정말 네가 그린거 맞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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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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