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여행 기록을 쓰며 글쓰기에 대해 한참 고민하던 때 누군가 아름다운 밤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문구 하나, 단어 하나에도 많은 고민을 하던 그 때, 아름다운 밤이라는 문구는 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밤이 아름답다는 게 무슨 의미야?” 우선 머리 속에 그려보는 것이 어려웠다. 깜깜한 하늘에 별이 떠 있는 풍경을 그리면 될까. 누군가는 가로등이 켜있는 어두컴컴한 좁은 골목길을 그릴 것이고 누군가는 수평선 위에 달빛이 드리워진 바다를 떠올리기도 할 것이다.


잠시 후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아름다운 밤이 아니라 별이 빛나는 밤이라고 하면 어떨까” 별이 빛나는 밤이라고 했는데 달빛 바다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돈 맥클린의 <빈센트>가 귓가에 맴돌거나 빈센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고 싶어 인터넷을 검색할지도 모른다. 별이 빛나는 밤은 아름다운 밤보다는 그리기 쉽고 의미 전달도 수월하다. (별이 빛나) 아름다운 밤 아니면 별이 빛나는 (아름다운) 밤, 무엇을 생략할지는 문장의 기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정보 전달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아름다운 밤은 언어가 가진 추상성의 한계를 보여주는 예로 볼 수 있고 별이 빛나는 밤은 언어를 이용한 묘사가 지닌 힘의 예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눈으로 그 아름다움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고흐의 그림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묘사와 추상화의 차이에는 이런 것도 있다. 별이 빛나는 밤이 하나의 사실이라면 아름다운 밤은 하나의 의견이라는 것. 별이 빛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진술하는 문장의 힘은 아름다움 밤이었다는 의견을 표현하는 문장의 힘보다 강력하다.


말하기를 중요하게 여긴 서양과는 달리 동양에서는 글쓰기를 중요하게 여겼다. 수백년 전부터 우리나라 청년 선비들은 과거에 급제하려고 골방에 틀어박혀 허구헌날 책만 읽었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것은 없어 보인다. 세계는 하나라며 글로벌화가 급속하게 진행됨에 따라 너도나도 영어를 외치고 말하기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긴 하지만 글쓰기가 중요하다는 인식은 여전히 견고하다.


최근 들어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부쩍 더 많아졌다. 당연한 일이다. 책을 출간하지 않아도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기록하고 공유하는 블로그나 SNS같은 플랫폼이 넘쳐나고 사람들은 기다렸다는듯이 자신의 의견과 생각을 쏟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생각과 의견을 정확하게 기술하고 멋지게 표현하고자 글쓰기 공부에 대한 욕구도 커졌고 논술학원강사, 독서토론지도사, 글쓰기 강사, 수많은 글쓰기 책 저자 등 너의 글쓰기를 도와주겠다는 직업도 많아졌다.


그렇게 너도나도 시작한 글쓰기. 타고난 재능 또는 훈련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문자로 표현하는데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대다수는 글쓰기가 생각만큼 만만한 일이 아님을 경험하게 된다. 글쓰기를 포기하거나 중단하는 사람들도 많이 생겼다. 생각을 해보자. "머리 속에서 맴도는 모든 생각들과 상상을 문자만을 이용해 표현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잖아"


모든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기 위해 꼭 글을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 광대한 의식의 세계를 언어만으로 완벽하게 표현할 수도 없다. 우리는 이미 경험했다. 아름다운 밤이라는 문구보다 고흐의 그림이 훨씬 더 강력하다는 것을. 그리기만큼 직관적인 표현법이 있을까. 그림일기를 그리던 아이가 독후감을 쓰면서 그리기로 표현하는 법을 잊고 그림책을 보던 아이가 문자로 쓰여진 책만 읽으면서 그림으로 읽는 법을 잊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림과 글은 왜 전혀 다른 매체가 된 것일까. 그림과 글이 상호 보완하며 읽고 보는 부모의 마음을 움직이는 아이의 그림일기를 보면서 그림과 글이 모두 필요함을 깨닫곤 한다. 이것저것 아름다운 것들을 모아 "아름다움"이라고 뭉뚱그려 표현하는 기능은 언어가 가진 장점이기도 할테니까. 지금의 문자도 수천년전엔 그림 또는 기호였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글쓰기나 그리기나 의식의 표현법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다.


글쓰기는 생각과 의견을 표현하는 여러가지 방법 중 하나로 이해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 같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기보다는 쓰기를 수월하게 여기고 사회 생활을 할 때에도 주요 소통 방법으로 글쓰기를 주로 사용한다. 따라서 글쓰기는 선택 사항이기보다는 필수 사항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림이나 사진같은 이미지로 의사 소통하자는 인스타그램이나 핀터레스트 같은 플랫폼도 있긴 하지만 카톡이나 페이스북 같은 글쓰기 플랫폼보다는 이용자수가 적다.


다행히 글쓰기의 중요함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그들 중 일부는 같은 고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들의 시행착오와 경험을 바탕으로 도움이 될만한 조언들을 글로 쓰고 책으로 출간했다. 수백년전 위대한 철학자부터 블로그로 스타가 된 작가까지. "그런데 그들의 진실한 조언들이 담긴 책들을 혼자 읽기만 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나는 그 책들에 대한 서평을 쓰면서 글쓰기 연습을 하고 독자들은 필요한 정보를 얻는다면 괜찮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담고 있는 책들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대부분 잘 쓴 글이 아니라 못 쓴 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무엇이 잘 쓴 글인지는 나도 몰라. 하지만 무엇이 못 쓴 글인지는 알 수 있지. 못 쓴 글에는 군더더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으니까" 빼고 빼고 또 빼라며 시범을 보여준다. 행복한 가정은 비슷비슷한데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다는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 생각났고 완벽함은 무언가를 추가할 것이 아니라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상태라는 생텍쥐페리의 말이 생각났다.


"바른 문장을 쓰며 네 생각을 제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고달픈 일. 그래도 해야겠다면 일단 써. 쓰고 나면 그 글이 너의 스승이 되어 줄거야. 그렇게 쓴 너의 글은 수백만가지 생각 중 하나에 불과할 뿐이지만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너의 생각을 알아줄 사람이 있을 리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해. 그런데 네가 a라고 쓰면 대부분은 b라고 읽는 문제가 발생해. 따라서 모호함은 제거해야 해. 그러려면 짧게 써야 하지. 긴 글은 아예 읽지도 않아. 잘 쓴 글은 모르지만 못 쓴 글은 알아. 그래서 교정교열이 필요해. 그럼에도 슬픈 현실은 재미있는 이야기와 쓸모있는 정보를 엉터리 문장으로 써도 베스트셀러가 된다는 거야"


책을 많이 읽고 글쓰기 연습을 꾸준히 한다고 해서 누구나 정확하고 멋진 글을 쓰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바른 문장을 쓰게 되었다고 소설가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쓸 줄 안다고 해서 논설위원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직업으로 글을 쓰는 전업작가가 아닌 바에야 고생고생하면서 누구나 훌륭하다고 인정하는 글을 써야 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왜 글쓰기를 공부하는데? 나는 그 이유를 이렇게 생각한다. "못 쓴 글 때문에 내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거나 심지어 왜곡되는 것은 막아야 하잖아"


이 글을 쓰면서도 나는 쓰지 말라는 접속사와 복문을 남발하고 말았다. 아마도 이것이 더 나은 표현을 알지 못하는 나의 현재 수준일 것이다. 글쓰기 연습이 진행되면서 바르지 않은 문장 사용 빈도가 줄어들고 문장이 짧아지고 군더더기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면 이 프로젝트는 나에게도 독자에게도 꽤 쓸모있는 글쓰기 참고 자료가 될지 모르겠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되었으면 하는 희망과 그렇게 되리라는 의지를 가지고 있다. 해야 할 일이 갑자기 많아지면서 점점 더 글을 쓰기 어려운 상황이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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