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소개서 1 에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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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에 대한 고민없이 성적대로 그리고 뭔가 있어 보여 선택했던 전자공학도 1학년의 시간은 허망했다. 나는 20대 청춘 사용 티켓 열 개 중 한 개를 수백개 조각으로 찢은 다음 신촌 일대 수많은 당구장에 마구 뿌리고 다녔던 것이다. 내 인생에 단 한번 존재했던 그 황금같은 청춘 시대를. (돌이켜보니까 그렇다는 것이지 그 때는 아마도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을거다)


누구나 한때는 어리석은 짓들을 한다. 문제는 바보였음을 깨달았을 때 바로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느냐다. (보통 이때 군대를 가거나 해외연수를 가기도 하지만) 2학년이 되면서 나는 중도(중앙도서관)에 다니기 시작했다. 1학년 때에는 단 한 번을 가지 않은 곳. 이 때 중도에는 6층이 생겼는데 6층 죽돌이로 자리를 잡은 나는 비로소 공부라는 것을 시작했다. 전자기학, 회로이론, 신호 및 시스템, 자동제어, 디지털 통신, 공학수학... 아이쿠 이게 다 뭐람. 뭐 하나 쉬운 과목이 없었고 학기 내내 몇 번씩 시험을 보는 이 전공 필수 과목들은 넘사벽에 가까웠다.


“이거 뭐 시험 치러 대학 왔나” 거의 매주 몇 번씩 치뤄야 하는 시험의 대부분은 주관식 수학 문제 풀이. 도대체 왜 이렇게 이해가 안되는 것일까. 도서관 책상에 앉아 알아 먹기 힘든 내용이 심지어 영어로 쓰여져 있는 교재를 읽고 또 읽을수록 도리어 머리 속은 텅 비어져 가는 것이 느껴졌다. "방금 읽은 문장들아 제발 내 머리 속에 남아 줘" 라며 중도 6층 출입구에서 매일같이 머리를 감싸며 괴로워하던 그 사람, 바로 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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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좀더 창의적인 시험 문제를 내려고 고민하는 공과대학 교수와 강사가 얼마나 있을까. 대개 교재에 나오는 연습 문제만 충분히 풀어봐도 어지간하면 좋은 성적이 나온다. 굳이 핑계를 대자면, “과외 2개는 기본으로 해야 학비를 내고 밥도 사먹을 수 있던 흙수저에게 어떻게 충분한 문제 풀이가 가능하겠어요. 늘 개념과 원리 정도만 이해하는 수준에서 시험을 치루어야 했다구요. 게다가 난 잠도 많은데”


하여간 어제도 좌절, 오늘도 좌절.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숨이 턱턱 막혔다. 그럴 때마다 나를 위로한 것은 매일매일 테이프에 녹음해서 닳도록 들은  <전영혁의 음악세계>의 그 어마어마한 음악들. 그 음악을 듣는 순간들은 신성한 의식의 시간이었다. 새로 나온 기타 연주라도 있으면 리프 하나, 뉘앙스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으니.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뭘 해도 했을텐데 말이야.


마음이 온통 음악에 가 있는데 공부가 될 턱이 있나. 그럼에도 공부에 대한 노력이 가상했는지 1학기 최종 성적은 3점대로 진입. “4.0 만점이니까 평균 75점은 되는 거잖아. 다음 학기에는 좀더 나아지겠지” 그리고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계속된 중도 6층 죽돌이 생활. 주말이건 주중이건 매일 아침 도서관에 등교, 과외하는 날을 제외하면 늘 밤 10시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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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풀이의 참맛이란 이런걸까. 이 때의 감격은 여전히 생생하다. 신호 처리 관련 문제 풀이였던 것 같은데 푸리에 트랜스폼, 벡터, 시간 도메인과 주파수 도메인 변환 등, 뭐 이런 것들로 낑낑대고 있을 때, 평소처럼 머리를 쥐어 짜고 있던 그 순간 불현듯, 혹시 이건가. 그리고 아! 온 몸이 뜨거워졌다. SKY 수학문제집 고난이도 문제를 풀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짜릿함. 주관식 문제 풀이의 황금 열쇠를 들고 요령의 요정이 되돌아 온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다. 오랜 수련 끝에 득도를 하면 그런 기분일까. 그렇게 이해가 가지 않던 개념들과 이론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문제 풀이가 수월해졌다, 거의 대부분의 과목에서. 하지만 평일은 과외 때문에 분당으로 잠실로 왔다갔다 했으니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은 주말 뿐. 여전히 연습 문제 풀이는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과목에서 A. 빈 답안지를 낼 수 없어 아무 수식이나 적어 내는 일은 더 이상 없었다.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어졌고 더 이상 두려움의 대상도 아니었다. 2학기 최종 성적은 4.0 만점에 3.7 전후였던 것 같다. 이후 졸업 때까지 4.0 만점에 3.6~3.8대를 유지했으니 평균 90점은 꾸준히 받은 셈. 물론 대학 4년간 최종 성적은 1학년 성적이 다 까먹었지만 그럼에도 KAIST 전자공학과 석사 과정에 합격하는 데에는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1학년 때에는 그깟 수학 문제 하나를 풀지 못해 패닉에 빠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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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하나의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할까. 나의 경우는 카이스트에 들어가는 수백 수천개의 해답 중 하나일 뿐이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각기 처한 상황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넘치고 부족한 것이 다른데, 하나의 정답이라는 것이 있을리 없잖아.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는 최적의 솔루션을 찾게 마련이며 본인 외에는 찾을 수도 없다. 전문가의 제안? 그것도 결국 사례 모음이라는 참고문헌이며 바로 내 솔루션이 될 순 없으니까. 게다가 한번 찾은 솔루션은 고정불변도 아니라서 상황이 변하면 계속 업그레이드까지 해야 한다.


산다는 것은 정말 피곤하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끊임없이 최적의 솔루션을 찾는 과정이 반복되니 말이다. 그런데 더 우리를 난감하게 하는 것은 이 때는 최적의 솔루션인 줄 알았던 것이 10년, 20년이 지나보니 최악의 선택으로 변해 있는 경우 또는 최악인줄 알았던 선택이 최선의 결과로 바뀌어 있는 경우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 경우 15년 후 결과적으로 볼 때 카이스트에서 보낸 시간들은 내 인생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 1순위가 되어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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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bopb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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