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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trict 6' 라는 것이 있었다. 이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영국의 식민지일 때부터 입법 수도 케이프 타운에 존재한 구역으로서 노예, 상인, 외지인 등이 정착해서 살던 '제6지구' 정도를 의미한다. 2차 대전 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그 지독한 '인종분리 정책'이 시행되던 아파르트헤이트 시대가 되면서부터는 주로 무슬림 유색인종, 아프리카 흑인들이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가 1960년대 말 남아프리카공화국정부는 개발과 인종분리 정책 및 범죄 소탕 등의 여러가지 명분에 따라 케이프 타운 도심에서 흑인 및 유색인종을 몰아 내고 백인들의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도심에 위치한 디스트릭트 6 에 살던 흑인 및 유색인의 토지를 강제 수용하고 25km 정도 떨어진 시외곽으로 이주할 것을 명령한다. 힘없는 주민들은 물론 대부분 순순히 정든 고향을 떠나게 되고 그들이 살던 집은 불도저에 의해 허물어지고 만다.

다만 학교, 교회, 사원 등은 원주민의 강력한 저항과 요구에 따라 남겨졌다고 하며, 1994년에는 1989년부터 추진되던 District 6 박물관도 설립되었다고 하는데 강제 이주 전 아파르트헤이트와 관련된 여러가지 사건들을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제6지구는 철거되었지만 정작 백인들이 들어와서 개발을 한다던가 하지 않아서 여전히 텅 빈 땅으로 남겨져 있다고 한다.

디스트릭트 6 강제 이주는 서울시 여기저기서 재개발된다는 각종 뉴타운이나 청계천 상가를 연상케도 한다. 결국은 돈없는 마을 원주민을 더욱더 외곽으로 몰아내어 그 자리에 높다란 아파트와 주상복합 빌딩들을 짓고 또한 그들의 생계 수단을 빼앗는 결과만을 초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이 모여 사는 안산을 연상케도 하며, 개발 논리로 정부에 의해 쫓겨나야 하는 용산 등의 철거민을 연상케도 한다.

우리나라 집값에 환장한 사람들과 건설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정부 관료의 눈에는 수많은 대한민국 디스트릭트 X 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강제 이주의 대상 정도로 보일 뿐이겠지. 이 정도면 인종까지는 아니더라도 '빈부 분리 정책' 정도는 될 것 같다. 따라서 땅부자들의 눈에 뜨이지 못하도록 MB 정부는 가난한 사람들을 멀리멀리 외곽으로 강제 이주시킨다. 아마 이 강제 이주가 MB 정부 '빈부 분리' 정책의 상징이 될지도 모르겠다.


따라서 <District 9> 이라는 영화에서 착한 놈과 나쁜 놈, 영웅과 악당이 신나게 싸우는 우주 활극 블럭버스터 따위를 기대했다면 그건 애당초 대단한 착각일지 모른다. 영화의 타이틀을 보라. <District 9> 이다. 외계에서 날아와 정착하여 살다가 이제는 강제 이주 대상이 되어 곧 떠나야 하는 <제9지구> 라는 거다. 실존했던 아파르트헤이트의 현장 'District 6' 를 연상케 한다. 물론 그 거주민의 외양이 유색인종과 가난한 서민이 아닌 괴물 새우를 닮은 프론 (Prawn) 이긴 하지만.

어찌 보면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리들리 스콧의 <에일리언> 이 생각나고, 데이빗 크로넨버그의 <더 플라이> 가 떠올려지기도 하며, 침략자가 아니라 침략 당하는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라는 H.G. Wells 의 <우주 전쟁> 이 생각나기도 하고, 좀더 넓게 보면 깨어 있어야 한다는 와쇼스키의 <매트릭스> 까지도 생각날 만큼 영화는 이전 SF 걸작들의 기운이 조금씩 느껴지기도 한다. 무산된 피터 잭슨의 <Halo> 대신 나온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위안으로 삼기도 하고. 그나저나 <Halo 3: ODST> 는 좀 실망으로 장삿속이 너무 보이는 완전 미니시리즈다.

이 영화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출신의 닐 블롬캠프의 장편 연출 데뷔작이며 피터 잭슨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닐 블롬캠프는 이 영화의 일종의 모태가 되었다는 짤막한 단편 <Alive in Joburg> 을 2005년에 만들었는데 이 단편에서 이미 <District 9> 의 전반적인 컨셉을 볼 수 있으며, 또한 <District 9> 의 주인공으로 다국적 기업 MNU 본부의 외계인 담당 직원 비쿠스로 출연하는 샬토 코플리가 저격수로 잠깐 등장하고 있다. 샬토 역시 남아공 출신이다.



영화의 내용은 '디스트릭트 6 강제 이주' 와 대단히 흡사하다. 케이프 타운에 있는 디스트릭트 6 에 사는 유색인종 및 흑인 등의 정착민들이 정부의 인종 분리 정책에 의해 시외곽으로 강제 이주된 역사적 사실에서 착안하여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디스트릭트 9 에 정착하여 살던 외계인 프론들이 정부의 명령에 의해 시외곽으로 강제 이주된다" 는 내용이다. 다만 영화에서는 순순히 따르기보다는 저항하며 전복을 시도한다는 점이 다르다.

그리고 이런 전반적인 내러티브에 현존하는 아프리카의 심각한 문제들을 교묘히 엮어 부분부분 드러내고 있다. 그러다보니 경우에 따라서 발생하는 사건의 개연성에 대한 의문이 들기도 하지만 그러한 부분들이 이 영화를 보는데 큰 문제가 된다고는 생각치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의문이었던 점은 그 거대한 모선이 어떻게 상공에 20년씩이나 가만히 떠 있을 수 있을까 하는 부분이긴 한데 뭐, 이것을 제외하면 어쨌건 영화는 대단히 치밀한 편으로 보인다.

대단히 뛰어난 그래픽과 편집이 우선 돋보이며 새우에서 진화한 듯 보이는 외계인과 후반부 등장하는 프론과 DNA 가 연결되어 있는 듯 보이는 생체공학형 로보트의 액션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가히 혀를 내두를 정도다. 아니 이 정도가 저예산 영화면 도대체 고예산 영화는 뭔가 싶을 정도로.


하여간 이 영화를 굳이 content 와 form 으로 구분한다면 content 는 '아프리카'요, form 은 'SF & 다큐' 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사의 위대한 SF 걸작들이 대부분 그러했지만, 시대와 사회를 많이 반영하는 SF 라는 것은 어떤 내용을 담기 위한 하나의 형식으로서 보는 편이다. 점점 초고속으로 진화되는 과학기술 속에서 역시 급속하게 파멸되어 가는 인류의 인간성과 역사와 철학을 대조시킨 걸작들이 많이 나오지 않았던가. <District 9> 역시 그러한 작품들의 연장선 상에 있다.

그 내용이 '아프리카'라 함은 이런 거다. 식민지 시절의 분할 통치와 내전으로 상처받고, 엄청난 광석과 원유를 빼앗기고 노동력마저 착취 당하면서 하루 1 달러로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선진국은 곡식을 버리는데 여기는 굶어 죽는 아이들이 너무 많고, 순진한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다국적 제약 기업의 생체 실험 대상이 되어야 하고, 선진국이 나 몰라라 하는 통에 성인 인구의 20% 가 에이즈 같은 몹쓸 병의 환자이며,

그러면서도 여전히 서구 문명의 헤택을 받지 못한 채 전통과 주술에 많은 것을 의지하여야 하고, 무지함에 따라 각종 잔혹 행위가 넘쳐 나고, 나라의 지도자들은 부패하고 독재하기 때문에 정치, 사회적으로 대단히 혼란스럽고 범죄와 갱들이 판치고, 엄청난 자원을 보유함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에 헐값에 넘기고 그들이 파는 무기를 구입해야 하는, 세계 경제의 최하층을 이루는 아프리카를 말한다.

<디스트릭트 9> 에 등장하는 MNU 라는 다국적 기업은 프런들을 잡아다가 생체 실험을 자행하며 그들이 사용하는 DNA 에만 반응한다는 무기 개발에만 혈안이 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영화 중간에는 MNU 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큰 무기 생산자라고 소개되기도 한다. 지금 아프리카를 상대로 장사를 하며 생체실험을 자행하는 수많은 다국적 제약기업과 무기업자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디스트릭트 9> 는 <호텔 르완다>, <콘스탄트 가드너>, <블러드 다이아몬드>, <라스트 킹> 같은 아프리카의 현실을 다룬 이전 작품들과도 그 맥락을 같이 할 수 있는, 아프리카를 이야기하는 또 한 편의 영화라 할 수 있다. 르완다, 케냐, 시에라리온, 우간다 등에 이어서 <디스트릭트 9> 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가 그 무대로 삼아 위에 언급한 아프리카의 수많은 문제들을 뒤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1948년에 만들어져 넬슨 만델라가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된 1994년까지 지속된 남아공의 백인 우월주의와 지독한 인종 분리와 차별의 상징인 아파르트헤이트 (Apartheid) 라는 인종 분리 및 차별 정책이라는 재료가 하나 더해진 것 뿐이다. 백인종과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의 현실은 영화 속에서 프론과 인간에 대한 차별의 은유로 묘사되고 있다.

아파르트헤이트는 국민들을 소수 인종인 백인과 다수 인종인 흑인, 그리고 유색인종과 아시아인으로 나누어 거주지와 직장을 따로 설정하여 인종간 접촉을 금지하고, 흑인 및 유색 인종의 정치 참여를 배제하는 등의 철저한 유색 인종에 대한 광범위한 인종 차별의 상징같은 정책이었다. 명문상으로는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이 되면서 사라졌다고 하지만 이미 50년에 걸쳐 뿌리내린 정책이 쉽게 사그라들기는 어렵다.


내용이 '아프리카'였다면 <Disrict 9> 의 형식은 'SF & 다큐' 다. 인간성 상실의 문제 또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의 실체를 다루던 SF 가 다큐 형식을 도입하면서 관객으로 하여금 강건너 불구경 식의 활극 구경이 아닌 현장에 좀더 밀착할 수 있도록 하고 관련자와 TV 방송 자료와 전문가 인터뷰 영상을 중간중간 재현하여 마치 "이것은 사실이야" 라는 말하는 듯 하다. 은유적 메세지 관점에서 보자면 물론 그것은 사실일 수 있다.

MNU 외계인 담당 직원 비쿠스는 디스트릭트 9 철거를 위한 프론 강제 이주 프로젝트의 팀장을 맡게 되고 디스트릭트 9 에 들어가 프론들에게 이주 동의서를 받는 임무를 맡게 된다. 그리고 크리스토퍼라는 이름의 프론의 집을 수색하다가 발견한 어떤 물질을 실수로 흡입하게 되면서 그의 신체가 점점 프론으로 변이하게 되는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MNU 는 점점 프론으로 변화해가는 비쿠스의 몸을 이용하게 위해 그를 잡아 들이고 갖가지 실험을 한다.

자기 담당 업무를 소개하는 비커스의 인터뷰부터 신체가 변하고 MNU 의 실험대상이 되기까지 영상은 MNU 측이 직접 찍은 자료인 것처럼 보여진다. 그리고 비커스가 MNU 를 탈출하여 크리스토퍼를 돕게 되는 그 이후의 장면들은 마치 인터뷰 내용을 기초로 재현한 것이며 중간중간 비커스를 담은 영상을 편집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좀 복잡하다 할 수 있는 부분은 MNU 소속으로 프론들을 강제 이주시키면서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입장에서 점점 프론으로 변해가면서 겪게 되는 갈등 및 심리적 변화다. 비쿠스는 진행되는 변이를 저지하고 다시 인간의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미친 듯이 몸부림치지만 크리스토퍼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크리스토퍼를 돕는다. 이 과정에서 그는 과연 프론을 이해하게 되었을까... 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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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자면 외계인과 비커스를 찍은 다큐라기보다는 MNU 라는 다국적 기업을 조사하여 밝히는 포괄적 고발 성격을 띠는 다큐형 SF 또는 SF형 다큐이기도 하다. 신무기를 개발하기 위해 프론을 잡아다가 생체 실험을 하는 MNU 라는 기업이 프론들에게 무슨 짓을 했으며 디스트릭트 9 이 왜 파괴되고 프론들을 왜 새로운 구역으로 이주시켜야 했는지 등등에 관한 고발이기도 하다는 거다.

인종 분리와 차별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아프리카를 상대로 무기를 팔고 생체 실험을 하고 비싼 값에 약을 파는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에 대해 영화적 상상력을 더한 일종의 경고의 메세지라고 한다면 과장일까, 난 아니라는 거다. 거의 전쟁을 방불케하는 디스트릭트 9 에서 벌어지는 MNU 의 공격과 이에 극렬히 저항하는 프론, 아니 인간에서 프론으로 변해가는 중간 단계의 존재의 분노에서 우린 그것을 느낄 수 있다.



참고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2001년말 4,380만명 (성인 2,370만명) 의 인구 중 약 500만명이 에이즈에 감염되었는데 다국적 제약 기업은 넬슨 만델라의 남아프리카공화국이 HIV 약품에 대한 특허권을 침해했다고 정부를 고발하기까지 하면서 여전히 비싼 가격에 팔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내년 월드컵이 남아공에서 열린다. 난 그냥 씁쓸할 뿐이다. 그럼에도 혹 방문하게 된다면 디스트릭트 6 박물관을 꼭 한번 들러 보라고...


2009년 10월 27일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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